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

profile 해피진 0000

이런 자를 어떻게 쓸 수 있겠는가? 대체로 사람을 등용할 때는 그의 명망만 보아서는 안 되고 반드시 일을 시켜본 다음에 알 수 있는 것이다.

년영조5 4월 9일 좌변포도대장 이삼이 아뢨다.

청림사 범종보물 277호, 1728년영조4 무신혁명으로 청림사가 폐사가 돼 땅에 묻혀 있다가 발굴했다. 부안 내소사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어찌보면 450년전에 팽배한 온갖 사회적모순과 불합리를 타개하고 복지와 사호보장, 평등을 주창한 초개혁주의자인지도 모릅니다.

년이 지나 무신역옥추안-승정원일기-실록 등에 영조 때 정팔룡 이라는 인물이 또 등장한다. 1728년영조4 34세 정팔룡 은 이른바 이인좌의 난 때 부안 청림사에 근거지를 두고 삼남, 충청전라경상지방의 청림병을 지휘했기 때문에 제1 청룡대장으로 불렀다.

그 원인이 정여립이 비록 정5품이기는 하지만 막강한 인사권을 갖는 이조전랑의 물망에 올랐을때 이이가 그의 직선적성격등을 이유로 반대해서 등을 돌렸다는 설명과 오히려 이러한 직정적이고 적극적인성격이 동인의 중심인물인 이발과 잘맞았기 때문이라는 견해등으로 해석되고있습니다.

무신혁명이인좌의 난 때 정팔룡 의 부안 변산 노비세력들이 동참했음을 알 수 있는 사료다. 임영택은 1728년영조4 무신혁명 때 이천여주의 핵심 인물인 임서호, 51세와 같은 집안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이후 이사건으로 1,000여명이 목숨을 잃게되는데 이 숫자는 이전의 4대 사화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모두 500여명이었던것을 보면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조야기문은 그에 대해 기백이 굉장하고 말솜씨가 좋아서 입을 열기만 하면 그 말이 옳고 그른 것을 불문하고 좌석에 있는 이들이 칭찬하고 탄복하였다 고 쓰고 있다. 그만큼 언변이 뛰어났다는 뜻이다.

그가 독서하는 사람이라는 것만 알고 다른 것은 모릅니다.

스물두살에 진사가되고 스물네살에 식년문과 을과에 5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하면서 본격적인 공직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 당시 급제 평균 나이가 30세였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른 출세였습니다.

하였다. 팔룡 은 곧 여립 의 환호, 괴이한 이름인데, 실정을 모르는 자들은 다른 사람으로 알았다.

좁은 길목 양편에 처절한 역사의 왜곡의 슬픔을 아는듯 모르는듯 노란 금계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청림사 폐사지 석축 전북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에 있다. 1728년영조3년 부안 변산 노비대장인 정팔룡 은 청림사에 근거지를 두고 삼남 지방의 청림병을 지휘했기 때문에 청룡대장이라고 불렀다. 청림사 폐사지는 내변산의 들머리인 우슬재를 지나 쇠뿔바위우각봉 서쪽에 있다.

초여름에 가까운 맑은 오후. 완주군 상관면 읍내를 막 들어서면 왼편으로 정여립의 생가터를 알리는 표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선생의 이러한 의론은 고금의 유현들이 아직까지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선각자적인 소중한 인물이 우리 고장 완주에서 태어났다는 깊은 자긍심을 마음껏 가져도 될일이며 지금은 역사의 재조명을 통해 바르게 기록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생가마을인 월암리 뒷산으로 이 있던 진안죽도까지 정여립순례길이 나있으며 전라북도 아름다운 순례길의 한 부분으로 담아져있습니다

정팔룡 은 신용한 사람으로 마땅히 왕이 되어 계룡산에 도읍을 정할 터인데 머지 않아 군사를 일으킬 것이다.

앞서 몇걸음만 더 걸어들어가면 옛 기찻길터널에 다양한 형태의 전시관인 마중물갤러리가 자리하고있어 역사와 문화를 함께 즐길수 있을것 같기도하네요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한 것은 왕촉이 죽을 때에 일시적으로 한 말이고 성현의 통론은 아니다.

그러자 영의정 유전과 좌의정 이산해는 모두 그의 인품은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우의정 정언신이 이렇게 말했다.

심지어 정여립의 집터를 보아주었던 사람과 눈병이 나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정여립의 죽음을 슬퍼한다하여 장살을 당하기도 하였으니 어찌보면 정여립을 정적으로서 얼마나 두려워하였는지를 역설적으로 설명되기도합니다.

년영조22 5월 20일 강원감사 김상성이 장계를 올렸다.

정여립의 자는 인백이고 본관은 동래이며 아버지는 군수. 첨정종4품을 지낸정 희증입니다. 총명한 어린시절에 점점 자라면서 체격도 늠름하여지며 통솔력이있고 두뇌가 명석하여 경사와 제자백가서에 능통했었다고 전해집니다.

선조수정실록에 전하는 다음의 내용들은 범상치 않았던 그의 어린 시절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천하는 공물인데 어찌 정해진 주인이 있는가?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아니랴? 등의 사상문제와 함께 백성들의 고통과 세금, 관리들의 부패 등의 현실 문제들을 개탄하며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합니다.

또한 그는 유가에서 말하는 이상세계인 대동사회구현을 위해 양반과 상민은 물론 노비까지 600여명이 매달 한차례 담소도 나누고 천반산등에서 활쏘기를 비롯한 병법훈련을 하는 대동계를 만들어 반상의 귀천과 남녀차별없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길삼봉 삼산 형제가 신병을 거느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계룡산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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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헬로우드림 바니파파 |
산행 글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하얀색 진달래는 수달래라고도 부르는 철쭉입니다.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색도 흰색이 강하고 꽃잎이 두툼하고 부드럽습니다. 처음 만나신 야생화는 구슬붕이 이고요 두번째 만난 야생화는 개별꽃입니다. 야생화는 등산로를 따라 다니면 거의 없고요 계곡을 따라 올라야 합니다. 금강이 휘감고 도는 죽대 정말 멋집니다.
profile 양파 |
블로그검색하다보면 종종방문하게됩니다실시간검색포스팅내용잘보고갑니다시간되시면 제블로그도 방문해주셔서 답방주시면 감사드려요
profile 커피향 |
좋은 글 감사합니다.
profile 섬사람 |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중 한분이 정여립선생입니다. 정선생의 미래에대한 혜안과 국가와 백성사랑은 칭송받아 마땅할것입니다.
profile 좋은하루 |
정여립의 사상이 조선 왕실에 불순한 것임을 부정할수 없으나 그렇다고 역모로 처벌될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지요 기축옥사때까지 정여립이 그 불순한 주장을 하는데도 조정에서는 문제 삼지 않았고 정여립의 제자들중에 그런 불순한 사상을 문제삼지 않는 것을 보면 당시에 정여립의 사상은 역모의 증거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지요 정여립의 역모를 고발한 황해 감사 한준의 장계에 정여립의 천하공물론이 언급되지 않은 것을 보면 정여립의 역모는 천하공물이 문제가 된게 아니고 군대 조직으로 서울을 치려한다는 한준의 일방적 장계에 의거해서 발생했던 것이지요
profile 복덩어리 |
어휴 전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열심히 쓴 글이 묻힐까봐
profile 토끼선생 |
썩 도움이 되지 못했을 듯 한데 그렇게 말씀 주시니 감사합니다. 죽도에 가시려면 사전에 조사를 좀 많이 하시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profile 가족4 |
모임방 만드시느라 수고 하셨어요. 덕분에 모두 따뜻하게 잘 지냈네요.
profile 가족4 |
정여립은 원래 이이와 성혼의 제자로서 서인 계열이다가 이이 사망 후에 동인쪽으로 돌아서면서 당시 서인의 영수격이자 선조의 총애를 받고 있던 송강 정철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했죠. 그 결과 정철을 비롯한 서인들의 모함에 의해 선조의 미움을 받고 지방의 한직으로 좌천되었는데, 그러자 곧바로 스스로 사직하고 대동계를 조직했습니다. 사실 그때부터 이미 선조에게 괘씸죄로 찍혀 있던 상태였죠. 조선 왕조에서는 통상적으로 모반의 의심이 투서되면, 조정에서는 우선 조사단을 파견하여 사태를 파악하고, 모반의 움직임이 보이면 이후에 군대를 파견하여 역모의 주동자들을 잡아들이는 것이 보통인데, 정여립 모반사건의 경우에는 그런 관례를 무시하고 처음부터 군대가 출동하였고, 결국 위에서 언급했듯이 생포된 정여립의 아들 정옥남에 대한 고문을 통해, 당시 동인들의 대부분을 가담자로 엮었습니다. 그 수사와 취조과정을 총 지휘했던 사람이 바로 당시 서인의 영수격이던 송강 정철이었죠. 정여립이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색채의 정치가였음은 여러 기록들을 통해 분명해 보이나, 정여립 모반사건과 그로 인한 이후의 이른바 기축옥사는 정철을 비롯한 서인들이 동인들을 제거하려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으로 날조 내지는 부풀린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또한 정여립과 이후의 이몽학과는 정사에서의 기록상으로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인물들이고요. 물론 말씀하신 대로 영화니까 다양한 상상과 해석이 가능할 수는 있겠지만, 역사적 배경에 있어서나 그 사상에 있어서나 전혀 무관한 두 사람을, 단지 비슷한 시기의 사건이라는 점만으로 하나의 틀안에 짜맞추려 한 것은 너무 무리한 오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profile 독서세끼 심선생 |
외우! 잘 읽었습니다.
profile 가족4 |
항상 소중한 건강 챙기시고 날마다 아름다운 날 되소서
profile 가족4 |
나무가 참 멋지네요. 특히배롱나무는 이런 곳과 잘 어울리는거같아요
profile 겁나 빠른황소 |
정성스런 포스팅 잘보고갑니다 공감도 꾹 누르고가요 편안한 목요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profile 화목 |
제가 이렇게 호기심에 충천합니다. 이제 어떻게 가는지 확실히 알았으니 다음에 마니산과 함께 번개를 하겠습니다. 함께 하지죠.
profile 그레이스 |
그래도 꼭 알고가야할 부분이긴한것같아요 소중한 정보 감사합니다
profile so_sostory |
좋은 자료 담아가요 -
profile 법선 |
안녕하세요? 사진이 멋있어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멋진 사진 때문에 스크롤 내리기가 아쉬워 머뭇거리다가 내렸더니 또 다른 멋진 사진이!
profile 냉동오리 |
숙종과 영조의 환국정치. 무신년의 란과 영조의 정미환국노론-소론, 완론온건파 등용 환국에서 탕평으로.
profile 고구마동이 |
잘보고 가용 앞으로 자주 자주 왕래해용!
profile 치우천왕 |
좋은정보 인거맞는거같아요 건강님도 제블로그놀러와주세요
profile 초지 |
꺅!마지막 장면.무섭. 흠 근데 징비록 드라마는 좀 어려운거 같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