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청의 난 2 묘청, 서경 천도와 여진 정벌을 주장하다

개경에서 서경으로 수도를 움직이려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당시 고려는 거란과 여진의 침략으로 인해 어지러울 때인데요.
이후 김부식으로 대표되는 경주김씨와 같은 문벌귀족세력이 주도하게 됩니다.
묘청의 난 실패가 우리나라의 종교,정치,학술,풍속등이 유교사상에 입각한 사대주의,보수주의로 전략하기 시작하였다고 서술하였다.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 의해 진압당한다
앞서 포스팅을 통해 이자겸의 난을 말씀드린적이 있는데요.
이런저런 논쟁을 벌이다가 저 산을 보라고 했다.
고려의 수도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개경입니다.
이렇듯 나라의 기반이 흔들리는데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고는 합니다.
이렇듯 특정가문의 권력독점이 지속되자 지방출신의 신진관료들은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수도를 옮기는 것은 무산이 되는데요.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개경파의 김부식 / 서경파의 묘청, 정지상이 있겠죠
오늘은 이와 관련한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합니다
도참, 예언 등의 활동을 한 승려로 추측된다.
그러나 묘청의 난도 결국 1년여 만에 김부식이 이끄는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고 말았습니다.
대동강 물에 상서로운 기운이 깃든 것 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훗날, 단재 신채호 선생은 묘청의 난은 낭불양가 대 한학파의 싸움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며, 진취사상 대 보수사상의 싸움으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 난이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유가의 사대주의가 득세해 고구려적인 기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애석해하였다.
외모, 출신, 본명, 인종을 만나기 전의 행적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알수가 없다.
고려에는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서경으로 수도를 옮길 것을 강하게 주장하였습니다.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키며, 새로운 나라를 새우려 했습니다.
서경평양, 중경왕경개경송악송도개성, 동경경주시, 남경양주한양서울 이다.
이들은 민생 안정을 내세워 금과 사대 관계를 맺었다.
물론 여러 가지 생각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신채호와 같다. 개인적으로 만약 묘청이 승리하였다면 조선의 역사가 조금 더 독립적이고 진취적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아쉬움이 남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조선사연구초 중에서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 의 일부분이다.
인종에 이어 다음 왕위인 의종에 이르기까지 왕권을 계속 약화되었습니다.
묘청의 난은 이 것을 계기로 발생하게 됩니다.
대동강에 도착할때에 맞춰 사람들로 하여금 기름떡을 대동강의 적절한 위치에 던져 가라앉혔다고 한다.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봉기하였다. 경순왕 김부가 경주의 사심관이 되었다.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켰다.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김치양을 제거하였다. 왕실의 외척인 이자겸이 권력을 독점하였다. 정답은 5번입니다.
다음시간에는 고려의 무신정변에 대해 정리해서 돌아오겠습니다
지학사 하이라이트 only 핵심 한국사입니다.
서기가 비치니 서경은 천기가 가득한 땅 이라고 허위광고를 한것이다.
개경 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김부식 일파를 몰아내려는 의도도 있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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