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의 주인공 유성룡 그는 누구인가?

의성 사촌마을에는 서해 유성룡 선생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책을 사서 보는 것을 즐기고 있으나, 돈 아끼라는 짝의 잔소리에 굴복하여 주로 '#밀리의 서재'라는 앱을 이용하역 독서를 합니다.
오늘은 아들과 인문고전 토론을 하기 위해 징비록을 읽었습니다.
예전에 샀는데, 아직 읽지 못하다가 새해 들어 큰맘 먹고 읽는 책이 있습니다.
* 원래 계획대로라면, 송복 작가님의 <조선은 왜 망하였나>을 읽었어야 하지만, 책이 절판되었고 코로나 사태로 인해 책을 빌리기가 어려워 결이 비슷한 '징비록'으로 대체하였습니다.
전쟁 당시 주역으로, 정부를 이끌던 유성룡이 말년에 혹독한 전쟁의 기록을 입체적으로 남겼습니다.
만약 칠천량해전 이순신이 있었다면이겼을까요?
유성룡은 천재라 불릴 정도로 매우 똑똑했습니다.
오늘날 입시는 정보력 싸움, 입시전형을 잘 알아야 대학갑니다!
유성룡은 의성현 사촌리에서 1542년 10월 1일 태어났어요.
옥연정사에 앉아서 해설을 듣고 있습니다아 그리고 지금은안동여행중 하회마을에서 안동펜션을 찾을것이 아니라 여기 옥연정사에서 숙박이 가능하다네요 누가 옥연정사를 임차해서 숙박은 물론 아침식사까지 대접을 한답니다
서애 #유성룡 선생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봉생정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유성룡은 어려서부터 글 읽기를 무척 좋아했어요. 또 글을 읽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몇 번이고 다시 읽었어요.
유성룡은 이순신 장군을 천거한 인물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주흘산, 조령산, 대미산 등에서 발원한 조령천이 합수하는 용연(龍淵)에 위치한다고 합니다
마당에 심겨진 이 소나무는 유성룡선생님께서 심으셨다고 합니다.
이때가 임진왜란 1년 전, 왜군의 침범 소식이 흉흉할 때입니다.
내가 전쟁 생각만 하면 울분에 속이 화르륵 탑니다.
나중에는 동인들이 다시 세력회복을 하고 엎치락 뒤치락 하는 관계가 되죠
시각과 조건의 한계는 있지만 당시를 기록하는 한국민의 전통은 평가받아야 합니다.
유성룡이 아니었던 들 이순신은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선진적이고 합리적인 제도들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면 조선은 조선이 아니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감히 생각하기도 힘든 혁신정책을 핍니다.
전하의 하늘이신..이 나라 만 백성을 섬기기 위함이었사옵니다..
이곳 교육은 지금 신청한다고 바로 들을 수가 없어요..
상처를 받은 유성룡은 선조의 부름을 거절하고 고향을 지킵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유성룡이 임진왜란 극복에 얼마만 한 공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립이 탄금대를 공격 장소로 결정한 이유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멀리 보이는 마을이 하회마을인데 더욱 가고 싶네요
메뉴는 오리 주물럭과 생고기 반반으로 한마리에 매실 막걸리였는데 야외에서 먹는 분위기와 함께 끝내주는 맛이었지요.
중학교 수학 개념을 그림을 잡아주면서 기초를 탄탄히 해줍니다.
고향 하회에 있는동안 유성룡의 누명은 벗겨지고 관직은 다시 회복되요.
운동경기만 해도 상대에게 패배하면 원인을 분석하고 재기하기 위해 힘을 기릅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승리를 거둘때 비로소 마음속의 채증을 날려보냅니다.
하나하나 읽다보면 다른 사건, 인물들에 대한 호기심도 생겨나네요.
2년에 한번 씩 취회(聚會)를 통해 봉생정 건립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마음속 악마가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지를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 수길의 행동에 검찰이 오버랩됨에 소름이 돋습니다.
드라마 <징비록>을 통해 유성룡의 업적이 재조명 되길 기대해봅니다.
구태의 지식인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늘 남의 철학으로 철학하는 시뮬라르크일 뿐이겠죠.
실학자들의 책이나 조선시대에 씌여진 책들을 읽으면 새로운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멀리 바라 보이는 하회마을은 정말 한폭의 그림입니다
그 가운데서 어떻게든 해결을 하려 노력한 모습이 더 멋있는것 같네요
우리나라에 유성룡같은 영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타나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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